사람은 때로 튼실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이다.-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중에서
엔드 오브 타임 (Until The End of Time)_Brian Greene

“시간의 끝”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나는 이 책이 물리적 시공간의 끝, 혹은 우주의 마지막 정도를 생각해 보는 책으로 느꼈다. 그러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종말이라는 주제에서 이 책을 시작하고 또 그 끝을 맺는다. 인간에게 모든 동기를 부여해온 원천이 필사, 즉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이라고 말한다.
이책은 특별히 어떤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아니 무슨 결론이라는 것을 내릴 수 없다고 계속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지극히 환원주의적 입장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저자는 입자로 구성된, 진화와 자연 선택의 산물인 자연과 인간이 빅뱅 이후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우주 앞에서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를 여러 물리법칙과 천제물리학 이론들을 이용하여 설득한다. 그러나 입자로서의 우주로 시작한 저자의 이야기는, 존재의 고귀함과 살아 간다는 것의 의미를 말하면서 이 긴 책의 끝을 맺는다. “우리는 무상하기 그지없는 일시적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하는 짧은 시간은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자기 성찰을 통해 만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창출했다. 영원히 변치 않을 유산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미 우주의 타임라인을 조망한 우리는 그것이 이룰 수 없는 목표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의 입자들이 모여서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얼마나 단명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연결 관게를 확립하고, 우주의 미스터리를 풀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모습인 ‘The Pale Blue Dot’ 을 보면서 우주 앞에서의 인생의 사소함을 느끼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여주는 우주의 크기와 지구의 모습, 그리고 그 지구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The Pale Blue Dot 에서 느끼는 작은 나의 모습과는 사실 비교 조차도 안된다. 이 물리학자는 우주의 운명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높이로 비유 (1층 올라가는데 시간이 아래층에 비해 10배가 더 걸림) 하면서 1층의 빅뱅, 8층의 최초의 별 (빅뱅 후 1억년), 그리고 현재(우주의 나이 138억년)는 10층에서 몇 계단 더 올라간 상태, 14층은 모든 은하의 디스토피아를 방불케하는 황무지 상태,등으로 우주의 스케일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30층 즉 빅뱅 후 즉 1030 년에는 거의 모든 은하들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물론 30 층 이후의 수학적 계산들도 나오지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참으로 상상하기 힘든 시간의 규모다. 저자는 프랑스 작가 Marcel Proust의 말을 인용한다.
“진정한 발견은 낯선 지역을 찾아갈 때가 아니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이루어진다.”
시간의 끝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나 쪽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왔고 또 아마도 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가끔은 시간의 끝쪽에서 나를, 삶을, 혹은 세상을 바라 보면서 살아 간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과학 서적, 혹은 과학 철학 서적 같지만 실은 끝이 없는 것 같은 길위에서, 어깨에는 나누지 못하는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온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 쉼표를 찍고 시간의 끝 쪽에서 내 삶을 돌아 보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흔적
저 별은
아직
거기에 있을까?
상자 안
고양이는
아직
살아 있을까?
아킬레스 건 파열
Day 1 (Sunday, July 7th, 2024)
아킬레스 건이 파열되었다. 간혹 이 부상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내 이야기는 아닐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축구 경기중 이 부상은 그냥 갑자기 내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정말 그냥 갑자기.
하프 마라톤 준비를 두달 전에 시작했다. 첨엔 5킬로미터씩 뛰다가 조금씩 늘여서 최근에는 18킬로미터까지 거리를 올렸다. 걱정했던 무픞은 괜찮았는데 고관절이 좀 아팠지만 금방 회복되어서 별 무리없이 훈련해왔다, 훈련 덕분에 살도 빠지고 몸도 가벼워져서 일주일에 한번 하는 축구 경기에서도 좀 더 뛸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나도 모르게 그런것들이 몸에는 좀 무리였던것 같다. 나이도 생각했어야 하는데 ….경기를 한 30분 정도 진행했고 어느 순간 뛰려고 움직이는데 뒤축에 “뚝”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자리에 그냥 주저 앉았다. 실내 경기장이라 소리가 컸던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된것이다.
대강 샤워하고 응급실로 갔더니 몇가지 검사 후 아킬레스 건 파열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앞으로의 치료는 며칠 후 MRI 검사후 결정될 것 같고…아침 8:50에 응급실 들어가서 발에 캐스팅을 한채 저녁 6:45에 응급실을 나섰다. 참 긴 하루다.


Day 2
캐스팅 된 다리가 무거워서 잠 자기가 좀 불편했다. 목발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아직은 힘들고. 밖의 날씨는 좋은데 그걸 창문으로만 바라 보고 있으니 멘탈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앞으로의 치료 과정, 기간, 그리고 그 동안에 처리해야될 일들, 가게일들, 여행 계획, 그리고 운동을 할 수 없음으로 인해 신체에 초래될 여러가지 변화들 등등을 생각하니 아 정말 아픈 다리가 문제가 아니라 멘탈을 잡는게 더 힘들것 같다. 마음이 복잡해서 뒷마당에 목발 짚고 나가봤다. 이 역시 쉽지 않다. 이제 쭉쭉 자라기 시작하는 고추, 토마토, 오이, 호박…잔가지도 잘라줘야하고 호박 수분도 해줘야 하는데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늘어져 있을 수는 없는일. 지하 사무실 랩탑, 서류등을 챙겨 올라와서 밀린 업무 처리하고, 지금껏 건강히 살아 오면서 처음 겪는 이런 치료를 과정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찍어 둔 사진과 생각들을 적는다.

Day 9 (Monday, July 15th, 2024)
오늘 MRI를 찍고 왔다. MRI는 어쩌다 보니 두번째인데 역시 좀 스트레스 받는다. 내일 정형외과 전문의를 만난다.
Day 10 (Tuesday, July 16th, 2024)
오늘 전문의를 만났다. MRI 영상을 보여 주면서 끊어진 곳을 설명해줬다. 그냥 보기에 뭉텅 끊어져 있었다. 수술 치료와 비수술 치료의 장단점을 말해주면서 두 옵션중 어떤걸 원하는지 선택하라고 했다. 두 경우 다 1년 뒤의 결과는 같다고 하길래 비수술을 원한다고 했고 의사 본인의 경우라도 비수술을 선택할것이라 해서 오케이 했다. 다만 비수술의 경우 치료 기간이 약간 좀 더 길다고 했지만 나는 조금 길어지는 건 괜찮다고 했다. 캐스팅 된 다리는 이번주까지는 그대로 두고 다음주에 다시 와서 발목 각도를 조절하고 다시 캐스팅 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담당 의사는 아들 친구의 아버지였다. 그 분도 달라스 카우보이스 팬이라 한참 NFL 이야기를 같이 했다.
Day 20 (Friday, July 26th, 2024)
오늘 다시 의사를 만남. 석고 캐스팅을 벗었고 아킬레스 부츠를 신었다. 앞으로 약 한달간 이 부츠를 밤낮으로 신고 있어야 한다. 필요할 때는 부츠를 벗을 수 있으서 일단 씻는게 가능해서 다행이다. 아킬레스건이 벌써 조금씩 붙고 있다고 한다. 발목 운동을 하루에 세번 하라고 하는데 아직은 발목을 직각으로 만드는게 힘들고 많이 당긴다. 앞으로 한주 동안은 양쪽 발에 각 50% 정도의 힘을 분산해서 움직이고 그 다음주에는 다친발이 75%, 그 담주에 다친 발, 한발로 설 수 있을거라 한다.


Day 27 (Friday, August 2nd, 2024)
Clutch 하나로도 좀 불편하지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한손이 자유로워져서 물건을 들고 움직일 수 있어서 행복하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좀 더 자유롭다. 다친 오른발에 힘을 좀 더 줘도 견딜만하다. 다만 아직 발목을 직각으로 만드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Day 51 (Saturday, August 24, 2024)
드디어 부츠를 벗었다. 두달 혹은 그 이상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벗게 되었다. 그래도 재발의 위험이 있어서 Achillotrain 이라는 $190이나 하는 발목 보호대를 하고 걸어야 하지만 두발로 걷는 기쁨은 새삼 새롭다. 이쯤되니 한국 여행 취소가 좀 많이 아깝다. 그냥 가되 되었을텐데. 그래도 아직 걷는게 좀 불편한걸 보면 한국 여행 갔었어도 분명 힘들었을거다. 나보다 두달 먼저 아킬레스를 다친 지인은 수술을 했었는데 그분과 비교해보면 비수술을 선택하길 잘했다 싶다. 그분의 회복이 좀 빠를듯 보이지만 비수술로 이정도 회복속도면 생각했던것 보다 긍정적이다. 불편한 다리로 인해 보석같은 핼리팩스의 여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 이제 가을이 느껴진다. 참 기억에 많이 남을 2024년의 여름이었다. 당분간 뛰는 운동은 못할것이고, 수영이나 자전거를 시작할까한다. 그런데 자전거, 왜 이렇게 비싸지?

12주차
아 참 나 원….지난 병원 방문 후 6주만에 병원에 갔는데…아킬레스가 늘어져 있다고한다. 발목을 90도 이상 뒤로 젖히면 안되는데 아무래도 재활이나 일생 생활가운데 그런 경우가 가끔 있었나보다. 재활도 그렇고 요즘 좀 무리를 했더만…좀 불편해도 그냥 그렇게 살던지 아니면 첨부터 다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12주를 그냥 통째로 날린것 같아 참 한심했지만 그래도 다시 치료해야한다. 다시 캐스팅을 하고 다시 목발을 짚는다. 3주를 이 상태로 살아야한다, 그리고 진전이 보이면 캐스트를 풀고 아킬레스 부츠를 신고 한 두달 살아야 한다, 12월은 되야 부츠를 벗을 수 있다. 이번에는 최대한 조심하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다시 뛸 수 있으려면.

D780
수동 필름카메라 FM2를 비롯해서 니콘의 자동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다가 2004년 부터 니콘 디지털 카메라 D100으로 디지털로 사진을 찍었고, 2011년 부터는 full frame body D700으로 재미나게 사진찍었다. 한 3년전에 D700 처분하고 그냥 아이폰으로 그냥 그냥 찍어 왔다. 더이상의 DSLR 구입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두둥…D780이 내 손에 들어왔다. D700도 굉장한 카메라였지만 와 이 D780은 조금 더 대단하다. 미러리스가 대세인 시대에 무슨 DSLR이냐고…맞다 맞는데 난 그래도 DSLR이 좋다. 스크린이 아닌 아날로그 펜타프리즘을 통해서 피사체를 바라볼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뭔가 소소한 즐거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D780 바디에다 미련이 남아 처분 못하고 있던 Nikon ED AF-S 28-70mm 1:2.8D 렌즈를 물려봤다.


사진을 찍을 때 거의 RAW로 찍는데 카메라 체크하면서 그냥 JPG으로 찍어서 Luminar Neo로 흑백 변환했다.
D100과 D700의 주 피사체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이제 더이상 왠만해서는 나의 새로운 카메라 D780의 피사체로 들어 와 줄것 같지않다. 뭘 찍을까 앞으로….
알라 Allah

미로슬라브 볼프의 알라 Allah, 한 5,6년 전에 구입한 책인데 얼마전부터 읽기 시작해서 2023년 2월에 끝냈다. 읽기를 마치기 까지 한 몇달 걸린것 같다. 신학자가 쓴 책임에도 읽기가 굉장히 까다롭거나 진도가 더디거나 한 책은 아니다. 부제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 라는 굉장히 도발적인 부제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도발적이거나 깊은 신학적 논쟁을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면 반드시 짚을 수 밖에 없는, 같은 유일신 개념의 이슬람이 도저히 받아 들이기 힘든 삼위일체 부분은 최대한 읽는이로 하여금 쉽게 읽어 나갈 수 있게 풀어서 서술한다. 그리고 그 삼위일체의 개념이 삼위라는 숫자로 인해 유일신의 사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한다. 이책은 신학적 접근으로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를 분석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상식적인 접근으로 왜 저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같은 신을 예배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책이 쉽게만 읽히는 책도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바탕으로 논증적으로 이야기를 펴나가면서 또한 여러 역사적 문헌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논증을 뒷받침한다. 저자의 이러한 논증적, 역사적 접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결국 “공존과 평화”가 목적임을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라는 두 거대한 세력의 평화적 공존을 400 페이지 정도 되는 책으로 이룬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이러한 주제를 던지고 거기에 대한 고찰을 한다는 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 볼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은 큰 진전임에 분명하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이슬람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가져올 수 있었던 “이슬람” 이라는 제목의 책과 이 “알라”라는 책을 통해서 “보수” 기독교인인 나는 기독교와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은 더 넓어 진것 같다. 삶은 독서로 인해 더 풍성해 질 수 있다는걸 다시 한번 느낀다.